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힘 - 실리콘밸리 혁신의 비밀

관리자
2019-05-16

애플, 구글, 페이스북, 우버, 에어앤비 같은 IT기업들은 왜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할까?
왜 세계의 IT인재들은 이곳으로 모일까?
실리콘밸리 태동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곳이 가진 혁신성장의 비밀을 들여다보자.


DREAM

꿈을 좇는 사람들의 땅


실리콘밸리의 태동 시기는 1849년 골드러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골드러시는 금이 발견된 지역에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했던 현상을 지칭한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금광 채굴 붐이 일면서 일확천금의 꿈을 좇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사금을 채취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고 그런 아이디어에 투자자들의 돈이 모였다.
그렇게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시작됐고, 이후 진정한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스탠포드대 프레데릭 터먼 교수가 등장한다. 2차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유명한 교수들을 보스턴으로 모아 군수 관련 연구를 수행토록 한다. 터먼 교수 역시 이에 참여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스탠포드대로 돌아와 거의 혼자 힘으로 학교를 일으켜 세운다. 무기 관련 전자기술을 제공하는 첨단센터로 변모시킨 것. 무엇보다 그는 제자들에게 스탠포드대에서 연구한 지식재산을 자유롭게 들고 나가 창업을 하도록 장려했다.
그 와중에 AT&T 출신의 천재과학자이자 트랜지스터의 공동발명자인 월리엄 쇼클리가 1956년 캘리포니아에서 쇼클리반도체를 창업했다. 그런 그에게 CEO로서 자질은 없었는지 수많은 엔지니어 직원들이 1년 여 만에 짐을 싸고 나가 독립을 한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2명이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와 페어차일드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후 20년 동안 65개의 반도체회사가 인텔이나 페어차일드에서 분가해 나왔다는 것.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회사에 돈을 투자해주면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도 함께 태동했다.
반도체회사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던 1971년, <일렉트로닉뉴스> 돈 호플러라는 기자가 처음으로 ‘실리콘밸리’라는 말을 기사에 사용했다. 이후 실리콘밸리는 산호세를 중심으로 테크기업들이 많은 팔로알토, 산타클라라, 마운틴뷰, 서니베일 등의 지역의 통칭이 됐다. 반도체붐 이후 등장한 실리콘밸리 스타기업은 애플이었다.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창업한 애플은 1980년 상장에 성공하면서 PC 혁명의 주역이 됐다.

인텔 창업자 고드 무어와 페어차일드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출처 _ 위키미디어 커먼즈)


DOTCOM BOOM

닷컴붐, 인터넷기업들의 등장

실리콘밸리가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은 90년대 말 닷컴붐이 일면서였다. 넷스케이프, 야후, 시스코 등 인터넷기업들이 등장했고 천정부지로 기업 가치가 올랐다. ‘닷컴’자가 붙은 기업이라면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을 정도. 2000년 초까지 거품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2000년 4월, 나스닥지수가 무너지면서 닷컴붐도 사그라졌다. 필자는 2000년부터 2년간 실리콘밸리 인근의 UC버클리에서 MBA 과정을 이수했는데 당시 대량 해고가 만연했고 ‘실리콘밸리는 끝났다’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런 잿더미에서 구글이라는 기업이 나왔다. 구글 검색과 광고 시스템 덕에 먹고 살게 된 인터넷 스타트업들이 등장하면서 실리콘밸리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여기에 2001년 출시한 아이팟으로 재기에 성공한 애플이 가세했다. 2003년 마크 주크버그가 하버드대에서 창업한 페이스북도 2004년 실리콘밸리로 이사했고 2005년에는 누구나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려 공유하며 즐기는 유튜브라는 스타트업이 나왔다. 2006년에는 140자로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트위터가 등장했다. 2007년에는 아이폰이 나왔고 모바일 혁명과 소셜네트워크 시대가 도래했다. 2008년에는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비슷한 시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시작해 현재 수십조 원의 가치를 지닌 공룡기업이 됐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 서비스에서 온라인스트리밍 서비스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면서 100조원의 기업 가치를 달성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단지 인터넷, 소프트웨어 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구글은 2009년부터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망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던 테슬라라는 회사는 모델S의 성공으로 GM, 포드와 기업 가치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실리콘밸리 성장의 역사


PAY IT FORWARD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천국

실리콘밸리는 겨울의 짧은 우기를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화창하다. 덕분에 스탠포드대와 UC버클리대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은 졸업 후 상당수가 정착한다. IT 관련 일자리도 많기 때문에 전 세계 IT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하버드, MIT, 카네기멜런 등 동부의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학생들도 졸업 후 상당수가 실리콘밸리로 온다. 게다가 인종, 나이, 학력, 배경에 상관없이 비교적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로 모인다.
또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스탠포드대 등은 창업지원센터를 만들어 학생들의 창업을 장려하고 학교가 가진 지식재산권도 너그럽게 졸업생들에게 공유해주는 편이다. 엔젤(개인투자자)이나 VC(기업투자자)들은 창업자가 있는 곳이면 발 벗고 달려간다. 실리콘밸리의 로펌이나 회계법인들은 회사 설립, 투자, 매각 등의 단계나 심지어 인수합병(M&A)에 있어서도 가까이서 조언해준다.
스타트업을 열심히 키워 상장시키거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큰돈을 번 창업자들은 이 돈으로 다른 창업자에게 재투자하거나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을 ‘연쇄창업자(Serial Entrepreneur)’라 부른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서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을 창업해 더 큰 도전을 하고 있는 엘런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후배 스타트업을 조건 없이 도와주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페이잇포워드(Pay it forward) 문화라고 한다. 마크 주크버그처럼 500조 원이 넘는 회사의 CEO가 스타트업 창업자가 모이는 행사에 나가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크고 작은 밋업(Meetup) 행사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교환되며 검증된다. 그런 자리에서 잠재투자자가 연결되고 미래의 공동창업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애플의 새로운 사옥 애플파크
(출처 _ shutterstock.com)


RISK TAKING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곳

가장 중요한 것은 실리콘밸리 지역에 면면히 흐르는 모험감수(Risk taking)의 정신이다. 이것은 아마 160여 년 전 골드러시 때부터 이 지역에 심어져 있는 기운인 듯하다. 자신이 직접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창업자만이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들도 당장 월급이 줄더라도 스톡옵션을 통해 후에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활발히 한다. 직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천국 같은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구글도 “아무리 잘해줘도 스타트업 하겠다고 퇴사하는 직원들은 막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설사 스타트업을 하다 실패하더라도 실력만 있다면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수많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일종의 정신적 안전판(Safty Net) 역할을 해준다.
물론 실리콘밸리의 모든 것이 장밋빛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살인적으로 비싼 물가가 외부인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 한국에서 1년은 버틸 수 있는 자금도 몇 달이면 동난다. 공짜로 사무실을 얻거나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거의 없다. 실리콘밸리에 가면 무조건 투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톱클래스 스타트업들이 극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라 실력이 없으면 금세 도태된다.
하지만 이런 생태계의 선순환은 결국 기업들의 성공률을 높이고 인재들을 몰려들게 한다. 몇년 전 만났던 아이소켓이라는 샌프란시스코 인터넷광고 회사의 창업자 존 래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미주리주에서 사업을 시작한 나는 처음에는 반(anti)실리콘밸리주의자였다. 자신들이 IT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거만함이 싫었다. 그런데 회사를 키우면서 나중에는 나도 실리콘밸리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내 회사의 주요 고객과 실력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그리고 투자자들이 모두 실리콘밸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구글의 CEO 선다 피차이
(출처 _ 위키미디어 커먼즈)


최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역시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대, 카이스트 등 명문공대 출신 및 삼성전자, 네이버 등 대기업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사례도 갈수록 많이 목격되고 있다.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위치한 디캠프, 마루180,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구글 캠퍼스 서울 등에서 매일 좋은 스타트업 행사도 열린다. 위워크, 패스트파이브 등 늘어가는 코워킹스페이스에는 스타트업이 북적거린다. 수준이 높아진 한국 스타트업에 세콰이어캐피탈, 골드만삭스, 글로벌브레인 같은 해외 투자자들이 거액을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방향으로 잘만 육성해나간다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실리콘밸리 같은 선순환 구조가 정착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단시간에 될 일은 아니고 일관성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멀리 내다보고 자생적인 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글 _ 임정욱(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출처 : http://www.kipa.org/webzine/vol463/sub04.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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